작년 11월,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올해 8월 15일, 11시간의 진통 끝에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분만의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지만...(솔직히 말하면 지금 생각해도 출산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반가움과 해냈다는 성취감에 눈물이 났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험난하고 위대했던 경험이었기에 그 여정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 자연분만 vs 제왕절개, 선택의 어려움
처음엔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자연분만을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왕 여자로 태어난 김에 출산 고통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 중기가 넘어가면서 정말 별다른 문제가 없자 분만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제왕절개를 해야한다고 정해주길 바랬다. 이건 마치 지옥은 무조건 가야 하는데, 물지옥이냐 불지옥이냐 하는 문제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나는 자연분만을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그 이유는 제왕절개 수술 후유증 때문이었다. 제왕절개를 하면 자궁과 주변 장기들이 흉터 조직으로 들러붙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을 '유착'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수술이 잘 되어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 부위 흉터나 수술로 인한 합병증에 대한 리스크를 굳이 스스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자연분만 과정
😖 진통의 시작
예정일 일주일을 앞두고 마지막 내진을 하러 갔다. 진통도 없었고, 자궁문도 안열리고 아기도 전혀 내려오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걸어다니고 운동도 했는데 아기가 내려오지 않았다고 하니 실망했다. 이러다가 자연분만을 못하고 제왕절개를 할 것 같았다. 혹시 몰라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7시, 갑작스러운 가진통이 시작되었다.
오전 7시
생리통 같은 느낌으로 가진통이 왔다. 하지만, 전날 아기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지나갈 진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내 물컹한 것이 흘러 내리는 느낌이 들어 화장실을 갔더니 선분홍빛 피가 나왔다. 보자마자 이슬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전 10시
이슬이 비추고 난 뒤에도 진통은 계속되어 주기를 체크했는데,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다. 병원에 전화해보니 내원하라고 해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
오전 11시
내진을 해보니 어제와 동일하게 자궁문도 안열리고 아기도 안내려오고 자궁경부도 딱딱하다고 했다. 근데 자궁수축 검사를 해보니 진통은 규칙적으로 오고 있는 것이 맞았다. 선생님은 오늘 내일 진통이 심해질 것 같은데, 초산이라 아기가 빨리 내려오진 않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일단 당장 통증은 별로 크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만해도 통증이 그렇게 크게 안느껴져서 '생각보다 나 잘할지도..?'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밤 12시
진통은 계속 규칙적으로 있었지만 저녁까지도 참을만했다. 진통이 올 때마다 호흡해주고, 남편의 마사지를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밤 12시, 빨리 아이가 내려오길 바라며 집앞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점점 걷기가 힘들 정도로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결국 멀리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심상치 않은 고통이 시작되었다. 이건 진짜 못버틴다 싶어 미리 준비해둔 출산가방과 남편 짐들을 준비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해도 '설마 오늘 애 낳겠어?'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진통은 최대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 미리 병원에 가봤자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자궁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왕 고통을 참으면서 기다릴거라면, 더 편한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낫다.
💪 분만의 시작
새벽 1시
병원에 가자마자 분만실로 안내를 받아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 본격적으로 내가 분만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갑자기 애를 낳는다고...? 내진을 했더니 자궁문이 겨우 1 ~ 1.5cm 열렸다. 그런데, 아기는 전혀 내려오지 않았다. 아기가 잘 내려올 수 있도록 자궁경부 마사지를 해준다면서 내진하시는데 진짜 아파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진통이 더 아파서 내진은 오히려 시원했다는 분들은 아마 아기가 내려온 상태라서 그런 거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진통도 힘들었지만, 내진이 더 아팠다.
새벽 4시
2번째 내진을 했다. 자궁문이 더는 안열려서 공포의 자궁경부 마사지를 한 번 더 받았다. 자궁 수축 통증은 점점 더 아파왔다. 조금이라도 통증을 잊기 위해 핸드폰으로 자연분만 후기를 찾아봤는데, 후기를 보면 볼수록 내 공포심은 더욱 커져갔다. 나는 지금 자궁문 1cm 열린 것도 아파 죽겠는데, 앞으로 이보다 더 큰 고통과 함께 자궁문 10cm 열릴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분만실 선생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무섭다', '제왕절개하고 싶다'며 징징댔다. 선생님들은 원래 엄마 자격 얻는 것이 어렵다며 마음을 굳게 먹으라 하셨지만, 나는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다.
새벽 6시
자궁경부가 부드러워지는 촉진제를 썼다. 관장도 했다. 나는 다시 제왕절개 하면 안되냐며 제왕무새가 되어 노래를 했다. 분만실 선생님들은 내가 수술을 강력히 원하면 해줄 수 있지만, 자연분만은 선불제, 제왕절개는 후불제라며 수술도 안아픈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확신이 없으면 아기 어떻게 낳냐며 꾸짖으셨다. 선생님들로부터 정신 교육을 받은 나는 얼떨결에 돌이킬 수 없는 자연분만을 길을 걷게 되었다.
💉 무통 천국
오전 7시
자궁문 3cm ~ 4cm가 열렸다. 이때도 진짜 아팠다. 원장 선생님 오시고 내진하시더니 8시에 무통 주사 놔주겠다 하셨다. 빨리 무통 주사를 맞고 싶었다.
오전 8시
약속한 8시가 되었는데 마취 선생님은 안오고 수축 강도는 더 세져서 짜증이 났다. 20분 뒤에 마취 선생님이 도착하셨는데, 기다리는 그 20분 동안 너무 아파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이때가 자궁문 5cm 정도 열렸을 때였다. 무통 주사를 맞자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렇게 1시간을 내리 잤다.
오전 9시 30분
내진과 자궁경부 마사지는 계속되었지만, 무통 천국으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살 것 같았다. 자궁문은 7 ~ 8cm 열렸지만 아직도 아기는 중간 정도밖에 안내려왔다.
💣 힘주기
오전 10시
자궁문은 거의 다 열렸는데, 아직도 아기가 내려오지 않았다. 무통 주사 효력이 사라질까봐 너무 두렵고 무서었다. 이때부터는 내진과 힘주기를 반복했는데, 힘을 줄 때마다 얼굴에 힘이 들어가서 답답했다. 분만실 선생님들이 아래에만 힘을 주라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전혀 감이 안잡혔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힘주기 방법(태림법 등)을 여러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은 정말 쉽지 않았다.
오전 11시
분만실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내진과 힘주기를 반복했다. 무통 주사 효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느껴져서 정말 고통스러웠다. 자궁 수축이 올 때마다 고개를 들고 힘주기를 하는데 이때가 제일 죽을 것 같았다. 내가 힘을 제대로 못줘서 분만실 선생님 한 분이 위에서 갈비뼈를 계속 밀었다. 극도의 고통이었지만, 제대로 못하면 더 길어진다는 생각에 이 악물고 힘주기를 했다.
오전 11시 15분경
정신없이 힘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내 몸은 초록색 천들로 감싸져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해내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만
오전 11시 30분경
분만실 선생님들의 준비가 모두 끝나고 원장 선생님이 도착했다. 원장 선생님 도착하자마자 힘주기 1번만에 아기가 나왔다. 아기가 나오는 순간에는 뭔가 쑤욱~하는 느낌과 함께 배가 시원해졌다.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내 배 위에 아기가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내 아기라고? 하는 생각으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지옥같은 고통을 겪고 내가 해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아기에게 '안녕? 반가워'라고 말하며 울었다. 병원에 도착한 후 11시간 30분 만이었다.
분만 이후
후처치가 이어졌고, 언제 아팠냐는듯이 원장 선생님과 분만실 선생님들과 수다 아닌 수다를 떨었다. 너무 아팠다고 징징대기도 했고, 겁쟁이인 나를 너무 잘 이끌어줘서 감사하단 말도 했다. 회음부 후처치는 따가웠지만, 분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입원
입원실로 이동한 후 바로 점심을 먹었다. 몸은 진통제와 무통 주사를 한 번 더 놔주셔서 크게 아프지 않았는데, 나중에 마취가 풀리면서 근육통과 회음부 통증이 점점 더 커졌다.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은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으니, 분만 후 통증이 심하다면 꼭 진통제를 놔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점심을 먹고 4시간 안에 소변을 보라는 미션을 받았다. 자궁이 커져있는 상태라 방광이 제대로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미션은 잘 수행했다. 회음부가 퉁퉁 부어있어 처음에 화장실 갈 때 두려웠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가장 걱정했던 회음부 통증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오히려 힘주기로 인한 근육통이 더 힘들었다. 특히 갈비뼈 부분이 너무 아파 일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금이 간 것 같았는데, 갈비뼈는 금이 가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는 다행히 3주차부터 조금씩 나아졌다.
💚 느낀점
- 자연분만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파서 충격적이었다. 무통 주사도 없던 시절 자연분만으로 나를 낳아준 엄마가 대단하다고 느껴고, 너무 아파서 다시 이 과정을 또 반복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니까 살만해졌고,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오만(?)한 생각이 들었다. 분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또한 지나간다는 것도 사실이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느꼈다.
- 분만실 선생님들은 엄청난 직업 의식이 있고, 힘도 세고, 정말 멋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제왕 엔딩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겁쟁이 쫄보였던 나를 멱살 잡아 끝까지 끌고 가주셔서 해낼 수 있었다. 분만 과정 내내 나와 분만실 선생님들은 완벽한 팀이 되었고, 결국 성과를 만들어냈다. 나는 자연분만의 장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엄청난 팀워크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 다시 임신을 한다면, 근력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을 것 같다. 특히 팔 근육과 등 근육이 힘주기 할 때 많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스쿼트도 임신 중에 많이 할 것이다.
- 나는 개인적으로 통증을 크게 느꼈지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어떤 분들은 너무 수월하게 분만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분만 전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많이 겁을 먹어서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차피 할거라면 투지를 가지고 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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